갈루아의 반서재

인간의 지구력에는 GPS 지표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지구력이란 그만두고 싶다는 욕망과 계속해서 싸우며 현재상 태를 유지하는 힘 - 새뮤얼 마코라 Samuele Marcora

자제력Self-Control이 날아오는 주먹 앞에서 움찔하지 않게 해주는 힘이라면, 지구력Endurance은 뜨거운 불가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고 계속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1분의 시간을 최선을 다해 뛰는 60초로 채울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인 것이다. 

비밀을 풀 열쇠는 배고픔이나 목마름, 젖산 축적으로 인한 근육의 피로 그 자체가 아니라 뇌가 그러한 신호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덴버의 크레이그병원에서 반 데런의 치료를 담당했던 신경심리학자 돈 거버Don Gerber는 <러너스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뇌수술이 그녀의 달리기 능력을 향상시켰을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수술로 일부가 제거된 반 데런의 뇌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방식으로 통증을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포기의 원인

인체를 기계와 동일시하는 전통적인 지구력 모델은 속도 저하나 포기의 직접적 원인이 근육에 찾아온 육체적 피로라고 보았다. 전통적 모델에서 노력의 강도에 대한 감각은 운동 과정에서 생상된 부산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새뮤얼 마코리의 정신생물학적 모델노력한다는 느낌을 유발하는 모든 요소(정신적 피로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지나간 메시지 등)가 근육의 상태와 무관하게 지구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전통적 모델

 

 ↗

 지속 불가

 근육 피로

 

 

 

 ↘

 노력의 감각 

정신생리학적 모델

 

 

운동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기타 '비물리적' 원인

 

 

 

 

 ↓

 

 

근육 피로

 →

노력의 감각 

 →

포기 결정 

선수들이 포기한 이유는 근육이 물리적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노력이 최대치에 이르렀다는 자각 때문이라는 것이 마코라 연구팀의 해석이었다.

마코라는 무엇이든 우리 뇌의 '노력 다이얼'을 돌릴 수만 있다면 지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한 것이다. 탈수나 근육피로, 터질 듯 뛰는 심장을 포함해 어떤 요소라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힘들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운동 선수들은 이러한 몸의 신호에 적응하도록 훈련을 받고, 시간이 갈수록 더 적은 힘으로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정신적 피로처럼 상대적으로 불분명한 요소들 또한 노력의 감각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마라톤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도록 집중하는 행위는 뇌에 적지 않은 부담을 준다. 마코라 가설은 보다 급진적인 아이디어로 발전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만약 정신적 피로에 익숙해지도록 뇌를 훈련할 수 있다면, 몸을 단련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보다 적은 힘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훈련만으로 육체적 지구력을 향상시켜 주겠다는 제안한다면..... 글쎄요,, 완전히 미친사람 취급을 당하겠죠. 하지만 피로를 유발하는 요소는 체계적인 반복 훈련을 통해 극복이 가능합니다. 이게 바로 육체적 훈련의 원리죠. 저는 같은 원리를 정신적 피로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추론한 겁니다."

뇌 지구력 훈련 Brain Endurance Training - 몇 주에 걸쳐 정신적 피로를 유발하는 컴퓨터 작업을 함으로써 육체적 훈련없이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실험

수문통제이론 Gate Control Theory - 예를 들어, 의자 다리에 정강이를 세게 부딪친 사람이 본능적으로 멍든 부위를 문지르는 것은 다친 부위에 고통과 무관한 감각을 추가하기 위한 행동이다. 몸의 특정 부위에서 뇌까지 감각을 전달하는 신호 전달 경로의 수는 정해져 있고, 따라서 아픈 부위에 문지르는 느낌을 추가하면 두 감각은 자연스레 같은 길을 놓고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아픈 부위를 더 많이 문지르면 고통이 차지할 수 있는 길은 더 좁아진다. TENS와 IFC는 이처럼 고통과 무관한 감각을 극대화하여 고통이 전달되는 길을 차단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더블 데카 철인경기 Double Deca Ironman Triathlon 

고통을 대하는 태도

통증 역치가 실험 집단에 상관없이 평균 50회 전후로 거의 동일했다는 사실이었다. 정상급 운동선수라고 해서 통증에 면역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또한 여느 일반인과 똑같이 육체적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통증 내성 부분에서는 세 집단이 극적인 차이를 보였다. 

훈련 중에 겪는 고통은 통증내성을 강화시키고, 이렇게 강화된 통증내성은 경기력을 향상시킨다. 

긴 지구력 운동 끝에 탈진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다리의 능력이 아니라 의지가 고갈된 것에 불과하다.

단순히 높은 온도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운동으로 신체의 적응 시스템에 압박을 가해야하는 것이다.

체력이 더 좋은 사람은 똑같은 속도로 달려도 허약한 사람보다 지방을 더 많이 사용한다. 체력이 좋을수록 같은 강도의 운동이 더 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비중이 개인에게 느껴지는 상대적인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강도 높은 운동을 할 때는 탄수화물이 절대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마라톤을 2시간 45분에 완주하는 페이스로 달렸을 때는 탄수화물이 총 에너지원의 97퍼센트를 차지했지만, 3시간 45분 페이스로 달렸을 때는 그 비중이 68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우리 몸에 저장된 탄수화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며, 연료를 모두 사용한 후에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공급의 속도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선수가 2시간 04분 26초로 세계신기록을 세운 2007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2리터의 물과 스포츠 음료를 철저한 전략 아래 섭취한 사례를 소개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는 연료 보급에도 수분 섭취만큼이나 큰 공을 들였따. 1.25리터의 스포츠 음료와 0.75리터의 물 외에도 그는 다섯 개의 에너지젤을 통해 시간당 60~80그램의 탄수화물을 추가로 공급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운동을 하면서 흡수할 수 있는 탄수화물의 최대량을 한 시간에 60그램(약 250칼로리)로 잡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가 섭취한 양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이 많은 탄수화물이 장에서 혈액으로 흡수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탄수화물(예를 들어 포도당과 과당)을 함께 섭취하면 두 성분이 내장벽의 서로 다른 세포 통로를 이용하여 동시에 흡수되며, 그 결과 최대 흡수율을 90그램까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60그램 이상의 탄수화물을 소화할 수 있다면 글리코겐 저장량이 고갈되는 시간이 그만큼 늦춰지고, 빠른 페이스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스칸디나비아에서 발표된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은 에너지원으로 쓰일 뿐 아니라 개별적인 근섬유의 효율적인 수축까지 돕고 있었다. 이는 글리코겐 성분이 줄어들수록 근육의 움직임이 약해지고 결과적으로 연료가 바닥나기 한참 전부터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근육은 혈액에 포함된 포동당보다 근육 자체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우선적으로 태우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전 세계에 있는 스포츠음료를 다 마신다고해도 피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탄수화물 vs 지방

소문에 따르면 사이클계의 전설 미겔 인두라인Miguel Indurain은 1990년대에 공복상태에서 다섯 시간 동안 싸이클을 타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케냐의 달리기 선수들은 평소 고탄수화물 식단을 섭취하지만, 종종 식량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텅 빈 위장을 움켜쥐고 달려야 한다. 산악인들 또한 며칠에 걸친 고된 여정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탄수화물 활용도를 희생하지 않은 채 지방 활용도를 늘리는 훈련법을 활용하게 되었다. 에너지 부족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환경에서 지내는 동안 대사 유연성을 높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뇌 지구력 훈련체험

'그렇다면 노력은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 가장 평범한 동시에 가장 정확한 대답은 '몸을 단련하라'는 것이다.

만약 1마일을 5분 페이스로 가볍게 달리고 쉽다면, 집 밖으로 나가 1마일을 5분 페이스로 달리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여러번, 훈련이 반복될수록 심장은 튼튼해지고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성 능력이 향상되며 혈액을 통해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하는 모세혈관의 수도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5분 페이스에 소요되는 생리학적 부담을 덜어주고, 그 결과 근육과 심장에서 뇌로 보내는 운동 강도 정도를 줄인다.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수월하게 느껴진다면 자연히 견딜 수 있는 시간 또한 늘어난다. 훈련의 효과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VO2Max 대신 노력의 감각을 활용하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관점의 전환이지만, 구체적인 훈련법에 관해서는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 

우리 뇌에 존재하는 노력 다이얼을 조절할 수 있는 요소라면 근육이나 심장이나 VO2Max 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지구력의 한계를 좌우할 수 있다. 새뮤얼 마코라가 피로 관련 화학 물질의 생성을 차단하여 뇌의 인식을 속이는 군대용 카페인 껌 실험을 진행한 것도, 웃는 얼굴이나 찡그린 얼굴을 무의식중에 보여 줌으로써 노력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그 결과 지구력 자체를 변화시키는 실험을 진행한 것도 모두 같은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뇌 지구력 훈련' 테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세션별로 노력의 감각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다가 2분에 하나 번씩 다리 근육의 피로도를 스스로 판단한여 속도를 늦출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션에서는 운동자각도의 최고치인 20단계를 유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100미터 전력질주를 하듯이 달리면서 그 정도의 강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점차 속도를 줄여나갔다. 노력의 최대치와 포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달리는 것은 말 그대로 속이 뒤집힐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역절차'의 활용 - 실험참가자들을 처음부터 빠른 속도로 달리게 한 뒤 상승한 피로도에 따라 운동량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계속해서 줄여나가라고 지시했다. 벨트라미의 실험결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며칠 후 실험 참가자들의 VO2Max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다시 측정했을 때 실험 전보다 더 높은 값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번 실험의 결과가 기존 VO2Max 보다 더 높은 양의 산소를 섭취했을 때 뇌의 설정이 바뀐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훈련은 근육이나 심장의 운동 능력 뿐 아니라 한계의 범위에 대한 뇌의 기준까지 바꿔준다. 울트라마라톤 선수들의 통증 내성은 일반인보다 한참 높으며, 선수 한 명을 놓고 볼 때도 훈련 사이클에 따라 견딜 수 있는 통증의 수준이 달라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굳이 뇌를 직접 타깃으로 삼지 않아도 모든 종류의 훈련은 결국 뇌를 단련시킨다고 볼 수 있다.

"단조로움을 유지하는 것이 이 훈련의 핵심입니다. 정신적 피로를 통해 뇌를 단련하는 효과를 내는 것이니깐요." 그는 말했다. "각 세션별 시간을 조금씩 더 늘려 보세요." 몇 주 후, 훈련 시간은 30분까지 길어졌다. 때로는 정신적으로 피로한 상태에서 달려보라는 마코라의 조언에 따라 모니터 훈련을 마치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뛰기도 했다. 그 효과는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나는 마치 하루 종일 일이나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바로 달리는 것 같은 피곤함을 느꼈다(마코라는 같은 원리를 활용하면 일상생활에서도 뇌 지구력 훈련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늘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에서 운동하지 말고, 가끔씩은 종일 일에 시달린 상태에서 헬스클럽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뇌 기능 활성화 실험

"우리의 목적은 결국 피로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이에요. 달리던 선수의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선수는 왜 속도를 늦추기로 결정하는 걸까요?" 

그는 단순한 연습용 시합에서조차 케냐 선수들과 서양인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냐의 젊은 선수들은 경기 후반에 걷거나 나가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 빨리, 가능한 한 오래 선두 그룹에 끼려고 노력했다. 반면 외국인들은 일저앟게 유지할 수 있는 페이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일정한 페이스에 집착하는 전략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완벽하게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초반 몇 걸음이 경기 전체의 속도와 기록을 결정한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접근은 평균적으로 좋은 결과를 보장해 줄지언정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빠른 결과가 일어날 확률을 현저히 떨어뜨렸다. 

초월Transcend 을 찍기 위해 케냐로 향했다. 달리기 문화의 심장부에서 몇 개월을 보내는 동안 그는 계산없이 질주하는 그들의 스타일이 자신을 향한 믿음에서 나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곳에서는 가장 느린 선수조차 매일 아침 '오늘은 나의 날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이러한 믿음은 세계 마라톤 기록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케냐 선수들이라는 현실과 어우러지면서 일종의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었다.

더 좋은 기록을 위한 자기 속임수들

'자기효능감Self-Efficacy'라고 부르는, 자기 자신의 능력과 성공을 믿는 마음이 실제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근거이자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달리는 케냐 선수들에게서 나타나는 바로 그 현상이었다. 

자신감은 단순히 의지를 복돋아 주는 것 외에도 보다 섬세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주 긴 거리를 달려라

때로는 원래보다 빨리 달려라

가끔은 쉬어가며 달려라

- 마이클 조이너, 메이요 클리닉의 생리학자


"GPS 손목시계 같은 기술적 진보는 선수들의 인지와 행동 사이에 괴리를 만들어냈다. 실패의 위험을 줄여 줄지언정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해버린다."

 - 스티브 매그네스


인듀어
국내도서
저자 : 알렉스 허친슨(Alex Hutchinson) / 서유라역
출판 : 다산초당 2018.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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